건강

100년 전 조선에서 먹던 약, 지금도 쓸 수 있을까?

까칠한이과장 2025. 7. 30. 18:04

– 역사 속 의약품 탐험

1. 조선의 약방문 – 자연에서 구한 생명력의 기록

조선시대의 약물 치료는 철저하게 자연 중심이었다. 조선 왕실부터 민간에 이르기까지 사용된 약재의 대부분은 식물, 광물, 동물 유래 약재였으며,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문서가 바로 ‘약방문’이다. 대표적인 기록으로는 《동의보감》과 《향약집성방》이 있으며, 이는 단순한 약효 정보가 아닌 치료 철학과 당시 의학적 세계관까지 담아낸 귀중한 자산이다.

예컨대 감기 증상에는 생강, 대추, 감초를 끓인 탕약, 복통에는 황련, 작약, 오매(매실) 등을 활용했다. 이 약재들은 단일 처방보다 복합 배합으로 사용되었고, 환자의 체질과 기후, 질병 진행 단계까지 고려한 복잡한 조합이었다. 특히 ‘향약’이라 불리는 국산 약재 기반의 치료법은 조선 의학의 독자성을 보여주는 부분으로, 중국 한방 의학과는 차별화된 실용 중심의 철학을 담고 있다.

오늘날 이 기록들은 단순한 전통 문화유산이 아닌 현대 한의학의 근간이 되고 있다. 현대에 와서는 일부 약재 성분의 과학적 유효성도 입증되었는데, 예를 들어 감초의 글리시리진은 항염, 진통 효과를 인정받아 현대 의약품에도 응용되고 있으며, 황기나 천궁 등의 성분도 면역 조절, 혈액순환 개선 효과로 재조명되고 있다.

100년 전 조선에서 먹던 약, 지금도 쓸 수 있을까?


2. 서양 의약의 유입 – 약국의 탄생과 조선 후기 약제 변화

19세기 후반부터 조선에 본격적으로 들어온 것은 서양 의학과 약물이었다. 최초의 서양식 약국은 1885년 설립된 제중원에서 비롯되며, 이곳에서는 조선인들에게 처음으로 알약, 캡슐, 소독제, 연고제 등이 제공되었다. 이는 조선 전통의 탕약 중심 치료에 큰 변화를 가져왔고, 약의 개념을 **'즉각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과학적 물질'**로 재정립하게 했다.

특히 아편제제, 퀴닌, 수은연고, 요오드 용액 등은 초기 감염병 대응에 혁신적 효과를 보였으나, 부작용과 중독 문제도 함께 수면 위로 올랐다. 1900년대 초 서울 시내에는 본격적인 약국이 등장했고, 의약품 수입과 제조도 시작되었다. 조선 최초의 제약회사 중 하나인 경성제약회사는 소화제, 안티푸라민 등 지금도 유사 제형으로 존재하는 의약품들을 보급했다.

이 시기부터 조선 사람들의 약 사용 방식은 점차 전통과 현대가 혼재된 형태로 바뀌었고, 부유층은 서양 약품을, 서민층은 향약과 탕약을 함께 사용했다. 특히 감염병(콜레라, 장티푸스, 결핵) 유행 시기에는 백신과 항생제의 효능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전통 약물의 입지가 줄어들기도 했다.


3. 지금도 쓰이는 조선의 약재들 – 과학으로 다시 돌아온 민간요법

그렇다면 조선에서 쓰이던 약재들, 지금도 의약품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많은 약재가 현대 의약품 혹은 건강기능식품, 한약재로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다만 그 방식과 기준은 과학적 검증과 안전성 확보를 거쳐야 한다.

예를 들어, 조선 시대 감기나 해열에 사용되던 생강, 계피, 마황은 현대에도 진통·해열·기관지 완화 작용으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마황에서 추출되는 **에페드린(Ephedrine)**은 현재도 일부 호흡기 치료제에 사용되며, 감초에서 추출되는 글리시리진은 항염 효과로 간 보호제나 스테로이드 대체제로 활용되고 있다.

또한 조선의 민간요법 중에서는 쑥뜸, 인삼주, 녹용 달인 물 등도 현대에는 건강기능식품이나 보완대체요법의 형태로 변형되어 소비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약재들은 오늘날 함량 기준, 유효 성분 농도, 중금속 검사, 잔류농약 여부 등을 통과해야 하며, 전통 처방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불법일 수 있다.

현재 한의학에서도 표준화된 전통 처방이 보건복지부와 식약처의 승인을 받아 보험급여로 인정되거나 전문의약품으로 개발되는 추세다. 이는 조선 시대의 지혜가 현대 과학과 융합해 다시 약이 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4. 역사와 미래를 잇는 약물의 시간여행 – 약은 시대를 담는다

약은 단순한 치료 수단이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의 삶, 믿음, 지식 수준을 담은 문화적 기록이다. 조선에서 사용된 약물과 치료법은 그 당시 사람들의 질병관, 생활환경, 생존 전략과 맞닿아 있으며, 이는 현대에도 이어지는 약에 대한 문화적 신뢰와 해석 방식에 영향을 주고 있다.

현대에 들어 AI와 유전자 기반 약물 설계, 3D 약 프린팅 같은 기술이 등장하면서, 우리는 ‘맞춤형 약물’이라는 새 시대에 들어섰지만, 한편으론 전통의 지혜를 재해석해 현대 의약에 접목하려는 움직임도 거세지고 있다. 실제로 전통 약재 기반의 신약 개발은 세계적으로도 각광받는 분야이며, WHO도 전통 의학의 현대적 통합을 지원하는 전략을 발표한 바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약재 그 자체보다 그 약을 바라보는 과학적 태도와 안전한 사용 시스템이다. 100년 전 조선에서 사용된 약들 중 일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쓰이고 있고, 그 중 몇몇은 미래 신약의 열쇠가 될 수 있다.

역사는 단절되지 않는다. 조선의 약재는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미래 약물 혁신의 씨앗일지도 모른다. 조선에서 온 약 한 첩이 오늘날 첨단 기술을 만나 새로운 생명을 구하는 약이 될 수 있다면, 우리는 진정 약의 시간여행을 목도하고 있는 셈이다.